수출 규제 사태 때문에 몇 달 간 스케줄이 할랑할랑해서 책 쓰는 데 투자할 시간이 비교적 많았는데 작년 11월 중순경부터 스케줄이 살짝 빡빡해지더니 12월 말부터는 더 빡빡해졌고, 지난 한 달 동안은 책 쓰는 데 들일 시간이 아예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네요. 얼른 마무리해서 한두 달 안에는 출간하자 싶었는데 지난 몇 달간 까먹은 걸 만회하기 위해서는 일을 걸러서 받을 상황이 아니라서 좀 무리해서 받고 말았습니다. --; 사실 이번 주도 일요일까지 빼곡하게 일정이 찼었는데 다행?인지 영화 두 편의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이 역시 더 많은 코패니즈 한자어를 싣기 위해 책의 해설을 줄이고 책에 썼던 내용을 가져와서 좀 더 보충해서 블로그에 쓰는 글입니다.

 

아주 오래 전, 아니, 옛날이라고 해야겠죠. ^^;;; 암튼 한창 일본어 학원 같은 곳을 다니며 일본어 공부를 했을 때 일본은 한국의 '귀향'이라는 말을 '귀성'이라고 한다고 배웠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일본은 帰郷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帰省이라고 한다고 알고 있는 분들도 (특히 초중급 학습자들 중에는) 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그 뉘앙스나 쓰임새가 다를 뿐 帰省와 帰郷라는 말을 둘 다 쓰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구분해서 쓸까요?

먼저 帰省(귀성)은 명절이나 휴가, 혹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일시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문맥에서는 ‘귀성’이라고 해야지 '귀향'을 쓰면 어색해진다는 말이죠.

今度のお正月に帰省するの?

반면에 帰郷(귀향)은 아예 고향에 돌아가서 정착하기 위해서 가는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역시 아래와 같은 문맥에서 ‘귀향이 아니라 ‘귀성’이라고 하면 부자연스러운 일본어가 된다는 거죠. 이건 복습도 겸해서 예문을 만들어 봤습니다. 아래 빨간색 부분을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 기억나시죠?

殺伐とした東京での生活から???するために帰郷することにしました。

????????? 도쿄 생활에서 탈피하기 위해 귀향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확인차 검색을 해 봤더니 원래 일본어 ‘귀향’은 예전에는 일시적으로 가는 것이든 정착하기 위해 가는 것이든 다 ‘귀향’이라고 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이와 같이 구분해 쓰게 됐다는 글이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어찌 됐건 일본어 ‘귀향’과 ‘귀성’은 오늘날에는 이런 쓰임새의 차이가 있다는 건 분명하단 말이겠죠?

그리고 이 둘과 비슷한 말로 「里帰(さとがえ)り」라는 것도 있죠. 근데 이건 결혼한 ‘여자’가 출산 등을 위해서 ‘처음으로’ 친정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쓰는 말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상번역을 했던 것 중에 옛날에 ‘봉공인(집을 완전히 떠나서 상인 가문 등에 가서 숙식하면서 일했던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에도 쓰더군요.

근데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조사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요즘은 꼭 ‘처음’이 아니라도 결혼한 여자가 친정에 가는 경우에 쓰는 말로 쓰임새가 확대됐고, 또한 외국에서 살다가 아예 귀국하는 경우에는 남자든 여자든 성별을 불문하고, 또한 결혼 여부를 불문하고 里帰り라고 쓰게 됐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넘어갔던 문화재 등의 ‘물건’이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경우에도 里帰り라고 한다네요.

 

(日) 한국의 경우 ‘귀향’은 일시적이든 정착을 위해서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일본어 ‘귀향’과 일본어 ‘귀성’처럼 쓰임새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일상생활에서 ‘귀향’이라는 말 자체를 쓰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고향(시골)에 가다’라는 식으로 표현하죠. 더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위에 예문으로 든 「今度のお正月に帰省するの?」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 한국에선 ‘귀향해?’라고 하지 않고 그냥 ‘고향(에) 가?’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거죠. 여담이지만 서울 사람들은 이걸 ‘시골 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이러면 지방 사람들, 특히 저처럼 ‘부산이라는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은 빈정 엄청 상하죠. ^^;;;

또한, 한국에서는 ‘귀성’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아마도 일본어의 잔재라고 생각되는데 ‘명절에 한해서’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을 묘사할 때 뉴스나 신문 등에서 귀성객, 또는 귀성 행렬, 귀성 차량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에 국한돼서 쓰일 뿐, 일상생활 속에서 ‘귀성 / 귀성하다’라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명절에 고향에 가는지 아닌지를 물을 때조차 “너 이번 명절에 귀성해?”라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람에 따라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도 없거니와 남이 말하는 걸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귀성 행렬’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명절 때 신문 헤드라인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추석 귀성 행렬 본격 시작

이런 표현을 자주 접하죠. 이 ‘귀성 행렬’을 일본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요?

帰省行列?

아닙니다. 일본에선 ‘행렬’이라는 말을 이처럼 ‘귀성’과 짝지어서 쓰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행렬’이라는 한자어의 쓰임새, 이 단어에 대해서 느끼는 양국민들의 인식이나 느낌 또한 미묘하게 다르다는 거죠.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면 일본의 방송 프로 「行列ができる法律事務所」를 업로더와 아마추어 자막러들이 그대로 직역해서 '행렬이 생기는 법률 상담소'라는 타이틀로 유포를 했죠.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경우에 '행렬이 생기는'이라고 하면 매끄럽지가 않습니다. 물론 의미는 통하겠지만, 특히 방송 프로 타이틀로 쓰기는 좀 그렇죠. 프로 번역가라면, 혹은 정식으로 수입해서 방영을 하려는 업체 담당자라면 타이틀 수정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겁니다. 아무튼 그럼 이걸 일본에선 뭐라고 할까요?

그건 바로…

帰省ラッシュ(귀성 러시)

이것이 일본에서 ‘관용적, 정형적’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말인 ‘귀경 행렬’은 어떻게 표현할까요? 귀성 행렬을 ‘귀성 러시’라고 하니까 당연히…

帰京ラッシュ(귀경 러시)?

이 역시 아닙니다. 일본어 帰郷와 帰京의 발음이 같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건 일본에서는 한국어 ‘귀경’ 행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Uターンラッシュ(유턴 러시)

일본은 이 경우의 ‘귀경’을 이처럼 ‘유턴’이라고 표현합니다. 희한하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참, 위에 예문 번역해 보셨나요?

 

殺伐とした는 ‘삭막한’ 정도로 번역하면 되겠고, 일본은 逃避(도피)를 긍정적, 능동적인 뉘앙스로도 쓴다고 했죠?

 

이에 관한 글을 읽어보지 못한 분은 아래 글 참조.

 

https://blog.naver.com/iveen/221485316065